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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국내외 협동조합을 찾아서

베이비부머 퇴직시대…협동조합에서 미래를 찾다(6)플랜트 분야 협동조합

[창간24주년]최소한의 임금 외에는 ‘재투자’…금융위기속 성장 비결

 

베이비부머 퇴직시대…협동조합에서 미래를 찾다


(6)플랜트 분야 세계적인 협동조합, 이탈리아 ‘SACMI’

 

 

산업분야의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초기 투자비용을 모으는 것에서부터 기술력을 갖추고 거래처를 확보하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게 없다.

앞서 소개했던 스페인 몬드라곤협동조합의 산업분야 기업체처럼 탄탄한 연구기관이나 그룹차원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설립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신념 아래 소수의 숙련공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90여년이 지난 현재 글로벌 기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협동조합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1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에서 설립된 SACMI(사크미)다.


1919년 이탈리아 기계수리공·금속세공인 9명
낡은 학교 체육관 임대, 농기구 수리부터 시작
기계 제작 등 플랜트 사업 뛰어들면서 급성장
설립 90여년만에 26개국 80곳으로 영역 확대
지난 2011년 기준 순 매출 1조9525억원 규모
5년간 계약직 근무·평가후 조합원 자격 부여

 

 

 

▲ 1919년 사크미 협동조합의 역사를 탄생시킨 기계 수리공·금속세공인 9명의 사진

 

 

◇실직 기능공 9명으로 시작한 사크미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실직 상태였던 9명의 기계 수리공·금속세공인들은 각자가 지닌 기술력을 믿고 하나의 협동조합을 차리기로 마음 먹었다.

첫번째 목표는 기계 수리를 위한 작업공간을 최소 하나 이상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이몰라(Imola)에 위치한 한 학교의 오래된 체육관을 임대하면서 사크미의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가 1919년 12월2일이었고, 총 주식자본은 4500리라(이탈리아의 옛 통화)였다.

9명의 조합원들은 처음부터 많은 수익을 기대하지 말고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데 동의했다. 의식주에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 이외에는 영업이나 재투자, 회사의 미래에 쏟기로 했다. 

 

 

 

▲ 사크미 본사 1층에는 지난 1919년부터 현재까지의 사크미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역사자료관이 위치하고 있다. 창업당시 사용했던 기계공구부터 최근 제작한 각종 장비까지 전시돼 있다.

 

 

 

협동조합 문화가 발달한 지역적 특성 덕분에 한 협동조합으로부터 스팀 기계, 농기구 등의 수리를 맡게 됐다. 그리고 수리에 그치지 않고 벽돌이나 도자기 등을 찍어내는 기계 제작으로 사업을 점차 넓혀나갔다.

저렴한 가격과 만족할만한 서비스 등으로 작은 도시인 이몰라에서 인근의 볼로냐로 거래처까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설립 10년이 지난 1930년 주식자본이 초창기보다 10배 이상 불어난 4만7500리라, 총 판매액 41만1687리라로 늘었다. 이후 순차적으로 세라믹이나 플라스틱 완성품을 찍어내거나 포장재를 만드는 기계를 제작하는 등 플랜트 사업에 뛰어들면서 사크미의 급성장이 시작됐다.



◇90년만에 이탈리아 대표 기업으로 성장

플랜트 분야 협동조합인 사크미는 설립 90여년이 지난 지금 26개국 80개 회사를 가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서울)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유럽은 물론 미국, 중국, 멕시코, 인도, 심지어 북한(평양)에도 회사를 두고 있다. 80개 회사에서 낸 순매출은 지난 2011년 기준으로 13억유로(1조9525억원)에 달한다. 근로자수는 1919년 9명에서 현재 4000명 수준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이몰라 본사에 근무하는 인원만 약 1100명에 달한다. 지역과 함께 성장한다는 일념하게 지역 일자리를 일정 수준 유지하고 있다.

사크미가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설립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 사크미 본사 전경

 

본보 취재진은 이몰라의 사크미 본사에서 도메니코 올리비에리(56) 전 대표이사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올리비에리씨는 “협동조합의 기본 원칙인 1인 1표제의 평등과 함께 살자는 협동의 정신을 90여년간 지켰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기본원칙만을 지킨다고 모든 협동조합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동의하며 “그동안 제품의 질을 높이고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꾸준히 연구하며 생산성을 높였고 재투자하는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일반적인 주식회사는 재투자 대비 이익배분율이 95%에 달하지만, 사크미의 경우 완전히 반대인 재투자비율이 95%에 이른다고 그는 설명했다. 재투자비율이 그만큼 높기 때문에 경쟁력 면에서도 일반 기업에 비해 월등히 앞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초창기 사크미의 매출은 급속도로 늘었지만 이익은 크게 늘지 않았다”며 “이는 최소한의 임금만을 가져가고 나머지를 재투자하자는 기본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며, 성장의 가장 큰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분야 세계 석학으로 불리는 볼로냐대학교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경제학)는 이탈리아의 가장 성공적인 생산·노동자 분야 협동조합으로 사크미를 꼽는다.

◇비정규직 근로자에서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

 

▲ 도메니코 올리비에리 사크미 전 대표이사가 사크미의 성장 배경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984년 사크미에 비정규직 근로자로 입사한 도메니코 올리비에리(56)씨는 5년간 계약직원으로 일한 끝에 1989년 정식 조합원이 됐다. 그리고 21년이 지난 2010년 5월19일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3년이 흐른 지난 5월18일까지 대표이사직을 수행했고 지금은 평직원으로 일한다.

사크미 역시 협동조합이다보니 일정 자격을 갖추면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정관에 의해 24살 이상 40세 미만이면서 범죄이력이 없어야 한다. 5년간 계약지원으로 근무하고 평가를 통해 조합원 자격이 부여된다.

이때 출자금 7만유로(1억원)를 내야 한다. 물론 14년간 나눠낼 수 있으며, 퇴직시 돌려받는다. 매년 수익금의 최대 30%를 배분받는다. 조합원이면 누구라도 대표이사가 될 자격이 된다.

조합원은 해고의 위험에서도 안전하다. 지난 2011년 이후 이탈리아를 강타하고 있는 금융위기, 대량 해고사태에서도 오히려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해외 생산이 90%에 달하다보니 자국에서의 적자를 해외에서 만회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글=이왕수기자 wslee@ksilbo.co.kr
사진=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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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4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