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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국내외 협동조합을 찾아서

베이비부머 퇴직시대…협동조합에서 미래를 찾다(5)이탈리아 볼로냐

[창간24주년]시민 10명중 7명이 조합원...협동조합의 수도 ‘볼로냐’

 

베이비부머 퇴직시대…협동조합에서 미래를 찾다

(5)도시 전체가 하나의 협동조합, 이탈리아 볼로냐

 

 

■ 평등한 사회구조가 배경
이미 12세기 노예폐지법 제정
계급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아
경쟁보단 협력의 좋은 모델로

■ 유럽연합 소득 TOP 5
주택·의료 등 다양한 협동조합
볼로냐 포함 에밀리아로마냐주
전체실직률 8.2%에도 5% 유지

■ 伊 최대 규모 ‘레가코프’
조합원, 전체인구의 64% 차지
총자산 25조원 생산가치 47조원
성장 배경은 질·가격 경쟁력
대형마트 COOP 가장 크게 운영

 

 

▲ 이탈리아 볼로냐에는 유독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많다. 일찍이 사회주의 정당이 영향력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붉은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이같은 정치적인 배경도 볼로냐에서 협동조합이 발달한 이유 중에 하나다. 볼로냐시 전경.

 

 

 

이탈리아 중북부 에밀리아 로마냐주의 대표 도시인 볼로냐는 하나의 협동조합 도시다. 시민 10명 가운데 7명이 협동조합원이다. 배고픔을 달래줄 간단한 식재료부터 비바람을 막아주는 주택까지 협동조합을 통해 구입한다.

스페인의 몬드라곤협동조합처럼 거대한 하나의 기업을 중심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혼자가 아닌 여럿이 힘을 합쳐 하나의 협동조합을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각각의 협동조합이 그물망처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시민생활 전반에 걸쳐 이런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볼로냐의 신비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 레가코프에서 국제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로베르타 트로바레리씨가 볼로냐의 협동조합 현황고 성공비결 등을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평등한 사회구조에서 협동조합 탄생

협동조합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볼로냐대학교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볼로냐는 전통적으로 계급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협동조합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이탈리아에는 1500년대까지 노예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볼로냐는 이미 12세기인 1257년 노예를 폐지하는 법률이 생겼을 정도로 평등을 추구하는 지역이었다.

볼로냐 주민들에게 협동조합은 왕자, 백작, 공작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을 두지 않는 평등한 시민이라는 사회 분위기에서 함께 살길을 찾고, 경쟁보다는 협력을 택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었던 셈이다.

1800년대 후반 농업 분야의 협동조합이 생긴지 100여년이 지난 현재 볼로냐가 포함된 에밀리아 로마냐주는 유럽연합에서도 소득이 높은 상위 5개 지역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유럽에 금융위기가 닥치며 대량 해고사태가 빚어진 지난 2011년 이탈리아의 전체 실직률이 8.2%로 뛰어올랐지만 이곳은 5%를 유지하고 있다.

 

 

▲ 인콥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 마트 형태의 상점. 이곳에서는 육류와 채소, 간식거리 등 각종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생활 전반에 걸쳐 뿌리깊게 자리잡아

볼로냐 주민들은 ‘시장간다’는 말 대신 ‘코프(콥)에 간다’고 표현한다. 코프은 꼬페라테(협동조합)을 줄인 이탈리아 말이다. 주변에 체인형 대형마트가 있지만 자신의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이 생산한 상품을 구입하는게 서로를 돕는 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협동조합을 찾는다.

협동조합이 각종 상품을 대량 생산·판매하는 기업형 마트에 밀릴 수도 있지만 가격이나 질적인 경쟁력을 갖췄기에 시장이라는 단어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자리잡았다.

 

 

▲ 볼로냐 시내에 있는 대형 책방. 협동조합인 이곳은 서점과 레스토랑, 와인바 등을 갖추고 있다

 

 

볼로냐에는 여러 개의 협동조합원들이 모여 설립·운영하는 유치원 협동조합과 도서 협동조합, 집을 지어 분양하는 주택 협동조합, 심지어 감기약 등 의약품을 생산하는 의료 협동조합도 있다. 제조·산업분야를 비롯해 문화, 예술, 미디어, 여행, 서비스 등 분야도 다양하다.

주민 절반 이상이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생활 전반에 필요한 물품 대다수를 협동조합에서 구입할 수 있는 볼로냐는 협동조합 없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도시, 협동조합의 수도로 성장했다.


◇상생의 길 도와주는 ‘협동조합을 위한 협동조합’

레가코프(Lega Coop)는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을 설명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연합단체다. 협동조합을 위한 협동조합이자, 각각의 협동조합을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체로 만들어주는 대표기구다.

 

 

▲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연합단체 가운데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레가코프 볼로냐지부.

 

 

 

 

본보 취재진이 찾아간 레가코프 볼로냐지부는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연합단체 가운데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에밀리아 로마냐주의 산하 협동조합을 담당한다.

레가코프 볼로냐지부에 소속된 협동조합은 2011년 기준으로 총 1284개. 조합원만 285만375명이다. 주 전체인구(443만2418명)의 64.3%를 차지한다. 총자산이 170억7700만유로(25조2775억원)에 달하며, 생산가치는 320억5400만유로(47조4466억원)다.

세부적으로 보면 서비스 분야 181개, 사회 분야 214개, 식재료 분야 195개, 노동자·제조 분야 181개, 소비 분야 140개 등이다. 이 가운데 대형마트인 COOP가 조합원 58만6411명으로 가장 크게 운영되며, 생산가치는 42억9500만유로(6조3575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레가쿠프에서 국제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로베르타 트로바레리씨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최고의 질을 비결로 꼽았다. 그는 본보 취재진의 상황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같은 비용을 요구하는 협동조합의 조합원과 비조합원인 통역가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당신은 누구를 고용하겠냐’는 그의 질문에 본보 취재진은 “조합원 통역가”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실력있는 통역가”를 고용할 것이라고 했다.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혜택을 주면 오히려 스스로가 가진 능력이나 자립심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게 그 이유였다. 레가쿠프는 협동조합들이 최상의 서비스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이왕수기자 wslee@ksilbo.co.kr
사진=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볼로냐대학교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

 

“민주적 시스템 유지가 최대 과제”

 

전통적으로 일가족 모여 의논하는 주민문화
협동조합 구성원 ‘1인1표 결정’과 일맥상통

1991년 세계최초의 사회복지 협동조합 탄생
협동조합의 전형이자 가장 성공적모델 평가

 

 

볼로냐대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볼로냐에서 협동조합 문화가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었던 배경으로 역사를 꼽았다. 상하 수직구조가 아니라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다 보니 협동조합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기반까지 갖춰졌다는 것이다. 다음은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와 일문일답.



-볼로냐 협동조합의 성공 요인은.

“기본적으로 볼로냐 주민들의 문화에서 꼽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볼로냐의 각각의 가정들을 보면 보통 일가족이 모여 모든 걸 의논하고 결정한다. 협동조합 역시 투자의 규모를 떠나 구성원들이 1인 1표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게 바로 다른 도시와는 다른 역사적 배경이다.”

-볼로냐에서 내세울 수 있는 협동조합은.

“199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회복지 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장애인, 정신 이상자 등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협동조합이다. 볼로냐시 협동조합의 전형이자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다. 이후에 다른 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협동조합이 많이 설립됐다.”



-협동조합이 계속해서 성장하기 위한 과제는.

“지금까지는 작은 규모의 협동조합 위주였다면 이제는 점점 규모가 크지고 있다. 구조상 자본주의 회사로 갈 위험에 직면해 있다. 소규모 사업체는 함께 모여 사업안을 의논하고 결정할 수 있지만 큰 규모의 협동조합은 그동안 유지된 민주적인 시스템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이런 문제점을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왕수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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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4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