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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국내외 협동조합을 찾아서

베이비부머 퇴직시대…협동조합에서 미래를 찾다

[창간24주년특집]‘노마지지’ 갖춘 퇴직자, ‘협동’으로 상생의 길 모색

 

(1)협동조합 만들어 제2의 인생 설계

 

 

▲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수제화 공장이자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사업장인 퍼플.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들은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베이비부머 퇴직시대를 맞아 산업도시 울산에서도 향후 5년간 1만명 이상의 퇴직자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위로는 부모를 봉양해야 하고 아래로는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소위 ‘끼인 세대’인 이들은 퇴직 이후에도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정작 일할 곳이 마땅찮은게 현실이다.

본보는 울산의 퇴직자 또는 퇴직예정자들이 은퇴이후에도 ‘100세 시대’에 맞는 제2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국내외 선진 협동조합을 둘러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 서울은퇴자협동조합
은퇴·은퇴예정자 100여명
생애설계·재능활용 등
주요사업으로 일자리 창출
실버커피숍 등 설립 준비중

■ 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경기침체·中저가공세 대응
‘크리스진’ 브랜드 생산
연령·특성별 제품 세분화
공동작업장 구축 목표

울산의 베이비부머들은 산업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자’들이 많다. 한 분야에서 오랜기간 종사해온 이들이 은퇴이후 새로운 일을 찾는건 쉽지 않지만 함께 머리를 맞대면 제2인생을 설계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협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말 그대로 협동이다. 같은 업종의 사람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함께 모여 힘을 합친다면 무엇을 해도 실패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동시에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 시너지 효과와 함께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서울의 은퇴자협동조합과 수제화협동조합을 찾아 그들이 만들어가는 제2인생을 들여다 봤다.

▲ 우재룡 서울은퇴자협동조합 이사장.

 

◇“퇴직 이후 행복한 삶을 위하여”

은퇴 관련 업무를 전담하다가 올해 초 사표를 낸 우재룡(53) 전 삼성생명은퇴연구소장은 최근 은퇴자 및 은퇴예정자 100여명과 함께 ‘서울은퇴자협동조합’이라는 협동조합을 차렸다.

초대 이사장을 맡은 그는 연간 100여차례 은퇴강연을 펼친 이 분야 전문가였다. 그가 회사를 박차고 나와 은퇴자협동조합을 차린건 베이비부머이자 퇴직자들이 자신의 재능과 돈, 시간, 인적 네트워크 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자신 또한 베이비붐 세대이기도 한 그는 “그동안 은퇴문제를 수없이 다뤘으면서도 정작 내가 은퇴자가 돼 적응하기까지 약 3개월이 걸렸는데, 일반인은 오죽하겠느냐”며 “퇴직자들이 은퇴 이후의 생활에 적응하고 행복한 제2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은퇴자협동조합은 △퇴직자의 재무설계·주거계획·취미여가 등 생애설계 △경험과 재능을 사장시키지 않고 활용 △공동구매 서비스 등 크게 3가지를 주요 사업으로 잡고 있다. 퇴직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게 꼽고 있다.

우 이사장은 “같은 취미나 성향, 기술을 가진 조합원들이 모이면 취미생활을 함께 할 수 있고, 또 실버 커피숍이나 친환경 음식점 등의 작은 협동조합을 꾸려 함께 주인의식을 갖고 일도 할 수 있다”며 “이런 방식으로 전국의 퇴직자 네트워크를 형성해 퇴직자들의 행복한 삶과 사회 참여를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은퇴자협동조합은 현재 조합원들의 참여를 전제로 ‘장애인을 위한 사진관’, 노인들을 고객 타깃으로 하는 ‘실버 커피숍’,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 등 다양한 협동조합 설립도 준비중이다.

 

 

                           ▲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바라봄사진관 나종민 대표

 


◇장인들이 만든 수제화협동조합

 

 

▲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주관으로 열린 작은마을의 희망 수제화 장인들의 사진전 ‘손’ 전시회가 창작공간 성수아트홀에서 열렸다

 

서울 성수아트홀에서 만난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박경진(여·38·디자이너) 이사장은 벌써부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이날 중국 바이어와 만난 자리에서 장인들이 만든 구두 샘플을 보내주면 필요한 만큼 주문하겠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비록 정식 계약을 맺은건 아니지만 조합에서 만드는 구두가 디자인이나 질적인 면에서 중국 바이어의 마음을 충분히 충족시켰다”며 “협동조합을 설립한지 3개월 만에 거둔 성과”라고 말했다.

 

 

 

                            ▲ 박경진 수제화협동조합이사장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어려움을 느낀 수제화 장인 4명에 전문 디자이너·MD(상품 기획 및 판매 담당)·가죽수입원 1명씩이 더해져 올해 1월 설립됐다. 경기침체와 중국제품의 저가공세 등에 맞서기 위해 힘을 합쳤다.

 

20대 초반의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1공장, 40대 위주의 2공장, 특화된 브랜드 구두를 만드는 3공장, 20대 후반부터 50대까지 직장여성을 위한 4공장 등으로 세분화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크리스진’이라는 자체 브랜드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지금은 여건상 장인 4명이 운영하는 1~4공장을 크리스진의 작업장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 조합원들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한 공동작업장을 만드는게 이들의 소박한 목표 중에 하나다.

 

                            ▲ 어태용 서울 광진구 자양동 퍼플 수제화 공장 대표

 


조합원이자 33년째 수제화를 만들고 있는 어태용(56) 퍼플 대표는 “장인 4명 모두가 구두를 만드는 경쟁자이면서도 열악한 환경에 처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협동조합으로 발전하게 됐다”며 “각자 가진 능력을 공유하다보니 오히려 좋은 구두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경쟁력까지 갖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글=이왕수기자 wslee@kisilbo.co.kr
사진=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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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0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