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것도, 받는 것도 없는 현대차 비정규직 협상>
한 초등학생이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부모를 졸랐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 과분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초등학생은 급기야 스마트폰을 사줄 때까지 밥을 먹지 않겠다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하루를 꼬박 굶었을 때 부모는 대화를 시도했다. 스마트폰을 사주는 대신 ‘부모님 말씀 잘듣기’ ‘편식하지 않기’ ‘숙제 잘하기’ ‘공부 열심히 하기’ ‘동생 잘 돌보기’ ‘학원 빠지지 않기’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스마트폰을 압수하겠다는 단서도 달았다.
이 초등학생은 이를 받아들였고, 스마트폰을 갖게 됐다. 이후 단서를 어겼다는 이유로 며칠 동안 스마트폰을 빼앗기긴 했지만 부모와의 약속은 대체로 잘 지켜지고 있다.
초등학생과 부모 사이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협상이다. 이 초등학생이 무조건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했거, 또는 부모가 과분하다는 이유만을 내세웠다면 대립각만 세웠을텐데 서로간에 주는 것이 있으면서 받는 것도 있었기에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국내 최대 자동차업계인 현대차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비정규직지회(사내하청 노조) 등과 계속해서 벌이고 있지만 결과가 시원찮다. 해결의 기미는커녕 오히려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양측은 현재 서로의 일방적인 양보만을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지회는 그동안 2·3차를 포함한 직접생산공정의 전원 정규직화만을 고집했다. 지난 10~12일에는 불법파업을 벌이고 생산라인을 점거하는 등 사측과 충돌했다.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최병승씨 1인에 국한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신규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법원의 최종 판단이 있기 전에는 정규직 전환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특별교섭(협의)도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양측이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합의점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노동계에서는 현재의 분위기에서 그 어떠한 성과를 내기 어렵고, 각각의 주체들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협상 테이블을 먼저 박차고 나올 경우 뒤따르게 될 사회적 비판을 우려하며 ‘성과 없는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서로간의 입장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협상 테이블이 정기적으로 마련되는 것 자체도 희망적이라는, 긍정적인 분석을 일각에서 내놓고 있긴 하다.
현대차와 비정규직지회, 지금처럼 100%만을 고집하면 서로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잃는 것도 있어야 한다. 양측은 앞서 언급한 초등학생 사례에서 나온 협상의 기본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경상일보 사회부 이왕수 기자 wslee@ksilbo.co.kr
'수첩-내가 느낀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산 청소년의회에 대한 우려 (0) | 2019.02.18 |
---|---|
[기자수첩]현대차, 파업 외엔 상생방안 없을까 (0) | 2013.09.02 |
<기자수첩-진보정치의 1번지 북구는 이제 옛말(?)> (0) | 2012.02.27 |
[기자수첩]동·북구청 공동지방정부에 거는 기대 (0) | 2011.05.13 |
[기자수첩]민주주의 국가에서 새삼 참정권 보장이라니 (0) | 2011.04.25 |